지난 목요일(5월 5일)부터 최장 6일간의 연휴가 시작됐다. 하루 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는 직장인들로서는 최고의 리프레쉬타임이다. 나 또한, 오늘(토요일)부터 4일간의 알토란 같은 연휴를 보낼 생각에 마냥 즐겁기만 하다.

몇 달 전부터 연휴 때 뭘 할까. 어디를 갈까 고민을 했었다. 해외여행은 모든 예약이 꽉 찬 상태라, 일치감치 포기한 지 오래다. 그럼 어디를 가야할까? 한참 고민을 하던 중 집사람이 보성을 다녀오자고 한다.

보성? 장인어른의 고향이며, 아직도 제일 윗 어르신인 고모님이 살고 계신 곳이다. 5월8일이 할아버지 제사라고 한다. 가족들이 모두 모일거라며 나에게 넌지시 의중을 물은 것이다. 오호라~ 고민할게 뭐 있나. 땡큐다~~ 몇 년전 가족 모임 때 한 번 가 보고 달리 보성을 여행한 적이 없다.
그 때도 추석 때 가족끼리 모여서 잠깐 들렀다 갔을 뿐 달리 둘러 보지는 못했었다.


가끔 CF에서도 볼 수 있었던 끝없이 펼쳐진 녹차밭이며,
1박2일에서 강호동과 멤버들이 죽기 살기로

갯벌에서 잡아 온 꼬막을 즐길 수 있는 벌교도 가깝지 않은가.
또한 최근 제주도를 오가는 쾌속선이
생기면서 신흥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는
장흥도 20분이면 넉넉히 갈 수 있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아침부터 여행갈 채비를 하느라 집사람이 이리저리 분주하다.
나도 오래간만에 가는 여행이라, 카메라며, 밧데리, 메모리카드, 삼각대를 꼼꼼히 챙긴다.
남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모두 담아오리라 마음 먹으며 말이다.
또한 블로그를 해야하니 노트북을 챙겨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리 저리 짐을 둘러 메고 상쾌한 기분으로 고고씽이다.

시간이 없다며 아침에 먹거리를 준비하지 못해 동네에서 가까운 맥도날드에 들러서
맥모닝 셋트로 아침을 떼우기로 했다. 향긋한 커피에 맥모닝 하나면 아침은 충분할 것이다.
시원하게 뚤린 자유로를 맘껏 달리다 보니, 한 없이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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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달리다가 첫번째 고민이 생긴다.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탈까?
아니면 강변도로를 타고 양재를 지나 경부고속도로를 탈까? 하는 고민 말이다.
고민도 잠시, 도로상황을 보니 한남동까지 15분이다. 미련없이 강변을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선택했다.
외곽순환도로는 평소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송내에서 너무 막히는 경향이 있다.
오늘은 왠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다.

20분 쯤을 달렸을까. 마포대교쯤에서 갑자기 차가 막히기 시작한다.
'잠깐 막힐 수도 있지'하면서 애써 내 선택이 옳음을 합리화 시켜 본다.
그런데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막힌 길이 뚫릴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평소 서울 시내의 교통흐름에 비추어 보면 '이 정도 쯤이야'하면서
다시 한번 위안을 삼아 본다. 그런데 한남대교까지 가는 내내 막혔다 뚫렸다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한남대교를 건너 '부산'방향의 경부고속도로를 타자마자
라디오에서는 '경부고속도로, 천안까지 정체'라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흘러나온다.

이 때부터 서서히 짜증이 밀려 오기 시작한다. 조금만 미리 알려줬더라면,
다른 길로 갔을텐데, 이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좀처럼 차가 앞으로 나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라디오에서는 계속해서
천안까지 정체가 풀리지 않고 있으며 2시간 30분에서 3시간이 걸린다는
안내 방송이 반복되고 있다.

애초 우리는 천안 휴게소에서 늦은 아침겸 점심을 먹고 천안 논산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넉넉잡아 보성까지는 오후 4시쯤이면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기흥IC를 지나고 있는 지금, 벌써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집에서 11시에 출발을 했으니 벌써 3시간이 지나간 셈이다.
더구나 천안까지는 아직도 30-40km가 남아 있다.


아침에 한껏 부풀어 올랐던 기분은 이제 점점 밀려 오는 짜증과 지루함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운전하는 것도 피곤하고 화장실도 가야겠기에 망향휴게소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망향휴게소는 몇 년만에 들러 봤는데 내부 시설이 깔끔하게 바뀐 것 같다.
연휴라서 그런지 휴게실 내부 식당에 손님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어차피 차는 계속 막힐 것이고, 휴게소에 들른 김에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난 육계장을 선택하고 잠시 휴게소 여기 저기를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5분쯤 지났을까. 집사람이 빨리 들어와서 밥을 먹으라며 독촉을 한다.


'이렇게 식사가 빨리 나왔나'하고 의아해 하면서 후다닥 안 으로 들어갔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집사람이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빨리 먹고 출발해야 하는데 무슨 사진을 이리저리 찍고 다니는거냐'며 투덜거린다.

그러고 보니 밥이 달랑 하나밖에 없다. 왜 하나밖에 없냐고 했더니 본인은 밥맛이 없단다.
'뭐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밥 맛이 확 떨어진다. 결국 둘 다 식사도 못한 채
다시 고속도로를 향했다. 즐거워야할 여행길에 이게 뭐란 말인가.

이 놈의 교통체증은 언제쯤이면 풀릴 수 있을까. 전용차선을 쌩쌩 달리는 버스나 승합차가
마냥 부럽기만하다. 넓지도 않은 땅 덩어리에 쉬는 날 맘 편하게 여행 한 번 가기가 이렇게
어려우니, 이 나라의 교통시스템이 정말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버스전용차선에 일반 승용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달리고 있다.
한 두대가 아니다. 다섯 대에 한 대꼴로 승용차가 달리는 모습이 보인다.
누구나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을 터인데, 항상 저런 사람들이 문제다.


이런 생각으로 투덜대고 있는데, 갑자기 운전하던 집사람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무슨 일인가 하고 봤더니
버스전용차선을 타고 가던 승용차가 앞에 카메라가
나타나자 우리 앞으로 갑자기
끼어든 것이다.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꼴이 아닌가.

입에서 욕이 나올지경이다. 분위기는 더욱 썰렁해지고 난, 이어폰을 귀에 꼽고 짐짓 모른 척
잠을 청해 본다. 한참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떠 보니 논산, 천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여기도 막히기는 마찬가지다. 아까 화를 내면서 식사를 못 해서 그런지 슬슬 허기가
밀려온다. 분위기도 썰렁해서 휴게소에서 쉬어 가자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몇 번을 고민하다가 호남 고속도로에 있는 이서휴게소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이런 분위기로 계속 가다가는 이 번 연휴 내내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 휴게소에서 이것 저것
집사람이 좋아하는 호도과자와 오징어를 사서 내밀어 본다. 아무 말 없이 받아 드는 걸 보니
이제 기분이 좀 풀린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벌써 오후 4시가 넘어 가고 있다.

네비게이션을 보니 예상 도착 시간이 앞으로도 3시간이 남아 있다.
보성에 도착하면 저녁 7시다. 어디 한 군데 둘러 볼 시간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길 바닥에 아까운 기름을 뿌리면서 차 안에서
연휴 중 소중한 하루를 날리게 된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기도 한다.

돈도 돈이지만, 쏟아 부은 시간이며 에너지는 어디에서 보상 받는단 말인가.

비단 나 뿐만 아니라 지금 고속도로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이와 더불어 발생하는 교통사고 까지 감안한다면,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 또한 어머어마 할 것이다.


이제 광주 톨게이트를 지났다. 또 한 차례의 교통체증이 밀려 온다.
어찌 이렇게 막히는 시간에 딱 맞춰 그 자리에 찾아 가는지 타이밍이 절묘하기까지 하다.
해가 지면서 창밖이 어둑 어둑해진다. 걱정이 밀려온다.
시골길은 도로 폭이 좁을 뿐더러 가로등도 거의 없어서
밤길 운전하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기 때문이다.

네비게이션에서 우회전이나 좌회전 안내가 나올 때마다 차를 세워 두고
길을 확인하고 찾아 가기를 수 차례 7시 40분쯤 드디어 보성읍내에 도착했다.
고모님댁에 전화해보니 다른 분들은 이미 도착하셔서
벌써 저녁을 마치셨다고 한다.
우리 둘만 남은 셈이다.

이 시간에 가서 밥을 차려 달라고 하기도 죄송
해서 저녁을 먹고 가기로 결정했다.
음료수도 살겸 가까운 편의점에 들러 여기서 가장 유명한 식당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답변이 가관이다.
'보성에는 유명한 식당은 없으니 녹차밭이나 구경하고 가란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날마다 접해 온 음식이 이 곳 토박이들에게는 뭐 그리 특별하거나 대단하지
않아서 그런 답변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아무 식당이나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어디로 가야할까.
일단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맛집이 있을거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으로 보성역과 터미널로 차를 향해 본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 봐도 딱히 눈에 띄는 식당이 없다.
그 때 문득 집사람이 결혼 전에 들렀다는
백반정식집을 찾아 보자고 한다.
그런데 걱정이 앞선다. 다녀온 지 십년이 훌쩍 넘은 식당을 찾아 낸다는게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스마트폰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보성 맛집을 검색해서 한참을 찾아 본 결과 '실비 식당'이라는
곳이 눈에 띈다.
가격도 착한데다가, 음식이 아주 맛깔스러워 보인다. 이제 찾기만 하면 되는건가.

보성읍내가 그리 넓지는 않은데 밤길인데다가 초행길이라 그런지
보성역 주변 골목길을 몇 번을 돌아 본 뒤에야 간신히 찾아냈다.
그런데 가게 안을 들여다 보던
아내가 본인이 예전에 왔던 식당이라고 한다.
오호. 드디어 찾았단 말인가.


자리에 앉자마자 백반정식을 시켰다.
1인당 7천원인데 반찬이 15가지가 넘게 나온다.
밥그릇을 열어 보니 갓 한 밥인지 김이 모락모락이다.
조미료를 거의 넣지 않아서 그런지 음식이 아주 정갈하고 담백하다.
배도 고픈데다가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공기 2그릇을 후다닥 해치웠다.
집 떠난지 9시간만에 처음으로 느껴 보는 포만감이다.


배도 부르고, 몸도 피곤하다 보니 그냥 그 자리에서 드러 눕고 싶은 심정이다.
하루 종일 교통체증과의 전쟁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사치는 누릴만 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도 잠시, 이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집사람이 눈을 흘기며 빨리 가자며 재촉이다.

마음을 다 잡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다시 출발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여기서 고모님댁까지는 10km, 예상 도착 시간은 9시다.
20여분 쯤 흘렀을까. 철도 건널목 너머로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와 정자가 보인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기만 돌아 가면 고모님댁이다. 절로 힘이 난다.
마지막 악셀을 힘껏 밟으며 나의 남도 여행 첫날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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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08 06:40 신고 [Edit/Del] [Reply]
    징검다리연휴라서 정말 많은분들이 가족여행을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ㅎ
    그래도 교통체증이 심해도 즐거운 여행보내고 오세요!
  2. 2011.05.08 06:41 신고 [Edit/Del] [Reply]
    여행 잘 다녀오세요~~~~~
  3. 2011.05.08 06:47 신고 [Edit/Del] [Reply]
    헐~~~~
    정말 끔찍한 여행이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
  4. 2011.05.08 06:50 신고 [Edit/Del] [Reply]
    에공....즐거운 여행되세요. 그래도...ㅎㅎ
  5. 2011.05.08 07:06 신고 [Edit/Del] [Reply]
    오 반찬이 15가지나 나오는군요!!
  6. 2011.05.08 07:37 [Edit/Del] [Reply]
    전 금요일에 부산 다녀왔습니다.
    어제 밤에 올라왔는데 열차에서 뉴스를 보니 정말 정체가 장난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힘들게 내려가신만큼 즐거운 휴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7. 2011.05.08 07:40 [Edit/Del] [Reply]
    남도 여행은 시간을 넉넉히 잡아 가셔야 할 텐데~
    벌써 다녀 오신 거예요?
  8. 2011.05.08 07:59 신고 [Edit/Del] [Reply]
    휴일 집나가면 X고생 이라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여행은 이런 우여곡절이 있어야 제맛이겠죠.^^
    즐거운 남도 여행 되세요^^
  9. 2011.05.08 08:19 신고 [Edit/Del] [Reply]
    남은 남도여행이 궁금해지네요^^;
  10. 2011.05.08 08:43 신고 [Edit/Del] [Reply]
    첫날부터 고생하셨네요~~~ 아이폰 밑에 꽂혀있는게 뭐죠? 전원공급???
    잘 보고 갑니다^^
  11. 2011.05.08 08:54 [Edit/Del] [Reply]
    요즘 여행 좀 하려고 하면 교통체증이 정말 문제죠?..
    힘겹게 다녀온 남도여행기..
    기대해도 되겠죠?.. ^.^
  12. 2011.05.08 08:56 [Edit/Del] [Reply]
    남도여행 가시는군요
    차도 막히고 힘드셨겠어요.
    저도 남도 가봐야하는데 ㅠㅠ
  13. 2011.05.08 09:48 신고 [Edit/Del] [Reply]
    정말 아름다운곳이라는데 기대할게요 ㅎㅎ
  14. 2011.05.08 10:44 신고 [Edit/Del] [Reply]
    남도 여행기 군요..
    재밌는 여행기 기대됩니다^^
    즐거운 징검다리 연휴되세요.
  15. 2011.05.08 11:06 [Edit/Del] [Reply]
    음..차 많이 막히셨나요?
    음...서울을 비워두고 남도에 가시다니...
    으..부러운 마음에 아무래도 심통 좀 부려야 할 것 같습니다~
    차들이여..브랜드님 가는 길마다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고,
    도로여 가는 곳마다 막히라~!!!우헤헤^^;;;
    즐거운 여행 하고 오세요~^^
  16. 2011.05.09 13:39 [Edit/Del] [Reply]
    정말 차선 안지키는 사람들 보면 짜증나죠
    그래서 우리 가족은 집에서 보냈어요~
    가족끼리 동심으로 돌아가서 옛날에 사둔 WII 게임기로 신나게 놀았죠^^
    • 2011.05.09 21:54 신고 [Edit/Del]
      네 그렇게 가족끼리 집에서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더니
      하루 내내 너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즐겁고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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