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난 다방과 쌍화차, 더할나위 없이 행복해
"다방",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쉴 수 있도록 꾸며놓고 차나 음료 따위를 파는 곳이다. 며칠 전 점심 시간에 손님을 만나러 갔는데 업무가 바쁜 지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한다. 주변에 머물 곳을 이리 저리 찾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 온 "다방", 요즘 서울 시내에서는 거의 찾아 보기 힘들어서 너무 반갑기도 했는데,왠지 낯선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멀리 가기도 그렇고 해서 건물 지하상가에 있는 다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래 추천 버튼을 꾸욱 누르고 필자와 함께 추억의 다방 여행을 떠나 보도록 하자.^^
아무리 시대에 뒤떨어진 다방이지만, "점심시간에는 앉을 자리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 갔는데,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게 아닌가. 주인 아주머니만이 혼자서 반갑게 필자를 맞아 주는데, 인사를 받고 나니 괜히 미안하고 멋쩍기도 해서 얼른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고 쌍화차를 한 잔 주문했다. 다방에서는 역시 쌍화차를 마셔야 제 맛 아닌가.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 여기저기 가장 흔하게 볼 수 있고 인기 있는 가게 중의 하나가 다방이었는데, "왜 이렇게 손님 한 명도 없는 천덕꾸러기가 됐을까" 하는 생각에 괜시리 서글픈 마음이 든다.
그 시절 다방은 사람과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였으며, 아침시간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모닝커피"를 주문하며 으레 들러야할 필수코스이기도 했다. 또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맞선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고 "00사장님, 00상무님"등으로 불리며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의 주요한 사업 미팅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중요한 스포츠중계라도 있을라 치면 동네사람들이 TV가 있는 다방에 모두 모여 대한민국 선수를 외치며 함께 응원하던, 친목과 화합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쌍화차가 나왔다.
코끝으로 익숙한 한약 냄새가 느껴져 온다. 계란 노른자는 없지만, 대추, 잣, 해바라기씨, 땅콩 등 각종 견과류가 씹는 맛을 더 해 준다. 조금은 커 보이는 하얀 덩어리가 있어 맛을 보니 마치 인절미처럼 쫄깃 쫄깃하게 입 안에 달라 붙는다.
"쌍화차"는 쌍화탕이라는 탕약에서 유래된 것으로 몸의 기운을 보충해 주는 의미인데, 몸을 따뜻하게 하고 체력을 증진시켜주어 피로회복에 좋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 예전 다방에서는 사람들만 만났던 게 아니라 요렇게 쌍화차며, 율무차, 유자차, 마차 등을 마시며 허한 속도 달래고 기력을 보충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냥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마시는 커피에 비해 은은한 향을 느끼며 이것 저것 씹을거리가 있어 지루하지도 않고, 몸에도 좋으니 그야말로 일석삼조가 아니겠는가.
필자가 중학교 다닐 때(80년대 초반)만 해도 다방과 더불어 동네빵집이 참 많았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삼삼오오 떼를 지어 빵 1인분을 시켜 놓고 담소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한참 올드팝에 빠져서 LP판을 들려 주는 음악 다방을 찾기도 했으며, 그 곳에서 DJ를 보는 친구들도 심심찮게 있었다.
요즘 1년에도 몇 개씩 새로운 커피 전문점이 생겨나면서 이제 다방은 설 자리가 없어졌으며,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쌀에 동네빵집도 점점 찾아 보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갑자기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이제 손님을 만나러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언제 또 마셔볼 것인가" 하는 생각에 남은 쌍화차를 단 번에 후루룩 마시고 일어섰다.
처음 들어왔을 때 어색하고 썰렁했던 기분은 온 데 간 데 없고, 금새 익숙해져 버린 그 옛날 다방의 추억 때문에 발걸음을 떼기가 어렵다. 이름도 외우기 힘든 국적 불명의 커피 보다는 향긋하고 몸에 좋은 쌍화차를 푹신한 의자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말 그대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쉬어갈 수 있는, 그런 "다방"이 여기저기 생겨나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그 옛날의 컨셉 그대로의 분위기로 요즘 세대의 입맛을 맞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최근 많은 사람들에게 90년대 향수를 불러 일으켰던 "응답하라 1997"처럼, 인사동, 대학로, 명동으로 추억의 다방을 퍼뜨리고 있는 "별다방미스리" 처럼, 옛 것을 지키고 계승하되 현재 고객의 욕구를 적절히 반영해서 새롭게 만들어 낸다면 우리만의 휴식 공간 "다방"을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며칠 전 들렀던 다방의 쌍화차가 못내 그리워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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